"아이들이 공부 안하고 TV에 정신 팔려 있는 모습을 보면 속이 터져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린 자녀들을 둔 가정 치고 아이들과 TV 때문에 실랑이를 하지 않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이런 강한 유혹을 아이들의 자제력에만 맡겨두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아이들이 TV 대신 책을 보기 바란다면, 부모가 먼저 TV를 끄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이다.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에게 "TV 좀 그만 봐라"하고 잔소리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임을 알게 될 것이다. 'TV하면 떠오르는 낮익은 풍경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아빠는 거실 쇼파 위에 누워 리모콘으로 TV를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아이에게는 "공부해라", "성적이 왜 그 모양이냐" 잔소리 하고 있는 광경이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최악의 교육환경이다. TV라는 매체가 비교육적인것도 문제이지만,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부모의 모습은 아이들의 학습의욕을 꺾는 것은 물론이고, 어른들에 대한 거부감과 반항심만 심어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광경이 연출되는 집도 있다. 아이들이 거실에 있는 초저녁 시간에는 TV를 안 켜다가, 밤이 늦어 아이들이 잠자러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애들만 안 보면 되지" 하고 슬그머니 드라마 보는 엄마들이 있는 집이다. 앞의 경우보다 좀 나을런지는 몰라도 이 또한 문제가 있다. 나는 가정 교육에 있어 TV를 보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들의 좋은 마음과 기운이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TV를 볼 시간에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들이 자극적이고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지적이고 진지한 여가 활동을 즐기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고 따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TV가 안 좋다고 하니까 억지로 TV를 못보게 하고, 매일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는 가정도 있다. 나는 이처럼 아이들의 욕구를 지나치게 막는 것도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TV를 못보게 하면 아이들은 친구집이나 이웃집에 가서라도 보고 올 수 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부모가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
요즘 중고생들은 TV보다 컴퓨터 게임을 즐긴다고 들었다. 내 주변에서도 자녀, 특히 아들들이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어 걱정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집에 컴퓨터를 없앤다고 아이들이 게임을 못하는 게 아니다. 집만 나서면 눈에 띄는게 PC 방이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게임이나 채팅을 즐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모의 잔소리가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봐야 한다. 그 보다는 진취적이고 지적인 다른 활동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건훈이는 초등학교 때 만화영화를 무지 좋아했다. 건훈이가 만화영화를 볼 때면 나도 옆에 앉아 같이 보았다. <아기공룡 둘리>, <빨강머리 앤>같은 만화영화는 내가 봐도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만화를 보고나서는 함께 '다음엔 어떻게 될까" '이런 장면 너무 재미있었지?" 하면서 같이 신나가 떠들곤 했다.
TV를 보지 않는 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남편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많은 가정들이 한동안 TV를 끄거나 시청을 자제하다가도 나중에 실패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아빠가 원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건훈이 아빠는 원래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늘 외국어 공부와 회사 진급시험 준비를 하느라 집에 와서도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TV 볼 시간이 없었다.
나는 건훈이에게 "TV를 그만 봐라", "TV 끄고 공부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건훈이가 커 가면서 자연히 TV를 멀리하게 된 것은 우리 부부가 TV시청을 별로 즐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TV가 아이 공부를 방해하는 주범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아이가 TV대신 책을 들기를 바란다면, 지금 당장 엄마부터 TV를 꺼라. 아이가 달라질 것이다.
*저는 오래 전에 아침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안 보면 내일이 궁금하고....... 그러다가 날마다 주인공들이 울고, 일이 꼬이는 것을 보며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함께 눈물을 흘리고 나면 하루종일 우울하기도 했구요...... 그때부터 TV 연속극이라든가 보는 것을 아예 많이 절제하게 되었답니다.
- '엄마의 말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 작가 박동주 글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