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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송광사

슈레_플로 2014. 11. 8. 17:30

송광사(松廣寺)

조계산 북서쪽 자락에 자리 잡은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인 승보종찰의 근본도량으로서 한국불교와 역사를 함께해온 유서깊은 고찰이다.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 되어 송관산 길상사라 하였다.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9년동안의 중창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고, 정혜결사를 통하여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근본도량으로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후 보조국사 지눌을 포함해 16분의 국사가 주석했던 선종사찰로 오늘날까지도 승보종찰로 불리는 한국의 대표적 선종사찰로 여겨지고 있다. 그동안 정유재란 및 임인년(헌종8년:1842년)의 대화재. 6.25사번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8차례의 대규모 중찰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수 있게 되었다. 송광사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불교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 목조 삼존불갑(국보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43호), 국사전(국보56호), 금동요령(보물 179호), 하사당(보물263호), 소조사천왕상(보물1467호)등을 비롯해 총8천여점의 불교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연혁 :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

1. 1200여년전 신라말엽 혜린선사가 창건하여 송광산 길상사라 이름하고 화엄종지를 선양하였다

2. 고려 명종 27년(1197년) 불일보조국사가 기곳을 정혜결사의 도량으로 정하고 가람을 크게 중창, 조계산 수선사라 개칭하고 선.교를 융합, 정혜쌍수의 조계종풍을 드날려 고려불교를 중흥시켰다.

3. 그로부터 16국사 등 수많은 고승석덕들이 속출. 그 명맥을 계승하면서 고려말에 이르러 절 이름이 다시 송광사로 바뀌었고 불(佛).법(法).승(僧) 삼보사찰중 승보종찰로서 우리나라 불교 조계종의 근본 도량이 되어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해 왔다.

4. 창건이후 지금까지 역사의 흥망성쇠와 함께 많은 병란과 화재로 6차에 걸친 중창을 하였고, 6.25사변으로 인해 대웅전 등 중심건물 대부분이 소실 되었으나 제7차 중창불사를 통하여 전후의 재난을 일부 복구하였다.

5. 1969년 정법구현과 보살도 실천 조계종풍과 목우가풍을 다시 일깨워 제2의 정혜결사 운동을 염원하면서 구산서사사에 의해 조계총림으로 발족하였고 그 후원과 신행단체로서 국내와 각처에 불일회와 분원 그리고 국제선원을 설립, 수행과 포교에 힘써 오고 잇다.

6.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전승보를 양성하고 안과 밖이 겸비한 총림 도량의 면모를 일신 시키기 위해 1983년부터 역사적인 제8차 중창불사를 진행하여 대웅보전등 많은 건물이 신축복원되어 우람한 가람의 위용이 다시 드러나고 승보사찰답게 다각적인 수행과 포교체제가 정립되어 한국불교의 중흥과 인류평화를 위해 진력하고 잇다.

7. 현재 국보3점 보물 2점 지방문화재 11점 천연기념물 1점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수도원으로서 정신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송광사 입구에 있는 연혁내용을 그대로 옮긴것이다.

절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자료나 내부촬영자료수집이 미흡하여 많은 내용은 기록하지못한다.

시간에 쪼기어 박물관등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이제 막 생긴다.

 

둘러본 몇곳을 옮겨 적는다

 

지장전 :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으로 지장보살의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섰고 그 좌우로 시왕(十王)이 모셔져 있고 천도재와 49재, 영가천도 등 각종 재를 지내는 곳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겠다고 원을 세운 보살로 삭발한 모습이다.

시왕은 인간이 살아있을 당시 지은 죄의 경중(輕重)을 가리는 열분을 가리키며 사람이 죽으면 그날부터 사십구일까지는 7일마다 그 뒤에는 100일 1년(소상:小祥),2년(대상:大祥)때에 차례로 각 왕에게 가서 생전에 지은 선악업의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승보전 :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상징하는 승보전에는 부처님 당시에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여 부처님과 10대제자, 16나한을 비롯한 1250명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이건물은 한국전쟁당시 소실된 대웅전을 송광사 7차 중창당시에 복원하면서 지어졌으나 송광사 8차 중창때 현재의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것이다.

 

관음전:

본래 성수전(성수전)이라 하여 1903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 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나세음 보살 좌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고 내부 벽화에 문신들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 있다. 또한 내외ㅏ벽에는 화조도, 산수화 등이 그려져 일반 사찰의 벽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곳이 송광사 관음전의 특징이다

 

보조국사 감로탑: 전라도 유형문화재 제 256호

16국사 가운데 제1세인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부도탑이다. 보조국사는 1210년(고려 희종 6년) 열반하였으며 고려 희종이 불릴 보조국사(佛日 普照國師)란 시호와 감로탑(甘露塔)이란 탑호를 내렸고 3년후인 1213년(강종2년) 을멱 4월10에 세워졌다.

독특한 형태와 고려 고승의 부도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높다.

 

비사리구시

송광사 비사리구시는 1724년 남원에서 태풍에 쓰러진 싸리나무를 옮겨와 만들어 졌다고 하나 사실은 보성군 문덕면 내동이 후곡(너문골) 봉갑사 인근 마을의 느티나무(귀목)이다.

그 쓰임새는 국가 제사시에 대중을 위해 밥을 담아 두는곳으로 쌀 7마가(4천명분)의 밥이 들어간다고 한다.

송광사 이외에도 비슷한 용도를 지닌 구시가 있으나 많은 사찰들에서는 종이를 만드는 일에 지통으로 사용하였다고한다.

송광사의 경우에는 여러 근거롤 지통이 아니라 밥통이었음을 짐작해 볼수 있다.

송광사 3대 명물로는 비사리구시. 능견난사. 쌍향수가 있다.

 

송광사 조계문:

송광사의 첫관문으로 일주문이라고도 부른다

이 일주문은 신라말에 처음 세운것을 1310년. 1464년. 1676년. 1802년에 고쳐 지었으며 현재의 조계문은 양식상 1802년에 새로지은것으로 보인다.

계단좌우에 세운 돌집승은 그 형태가 모호하여 사자같기도하고 원숭이 같기도하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것은 세속의 번외와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니 가능한 행동과 마음가짐을 정결히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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