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2024.04.28.
위치: 서울 도봉구 방학동 원당샘공원내
교통수단: 지하철과 도보
이동: 우이신설선 솔밭공원역 하차 도보로 약 10분
지하철1번 출구나와 우측으로 직진후
E마트 에브리데이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계속 직진 언덕배기올라 길건너 좌측 사이길로
계속직진하면 원당샘공원에 도착.
조금더 들어가 약수터 앞 우측에 있다.
서울시는 1968년 형태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이 나무를 서울시 보호수 1호로 지정하였고, 이후 2013년 문화적 가치 등급을 조정하여, 보호수 지정을 해제하고 기념물로 그 격을 상향조정 하였다는 그런 나무를 만나고 왔다.
이름하여 방학동 은행나무_대감나무.
지정당시 550살로 추정하였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격변기 경복궁 증축의 징목 대상이었으나 마을 주민 들이 흥선대원군에게 간청하여 지정에서 제외 될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처음 나무와 마주친 느낌은
"와우!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잘생겼다".
바로 그것 이었다.
그동안 많은 보호수를 찾아다니고 보아왔지만
이번은 말그대로, 느낌 그대로 달랐다.
뭐랄까 묵직? 듬직? 온화? 하면서도
든든한 그 무언가가 있는 그런 느낌.
말보다 느낌이 최우선인 그런 기분.
이런 저런 이유로 찾아볼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드디어 오늘 찾아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이곳 강북하고도 도봉구에 왔는데...
그동안 하루하루의 생활에 쪼끼고 찌들렸는데 이곳에 오니 한적함을 느껴본다.
그러면서 너무 "한적한데"가 바로 뒤를 따라온다.
왤까?! 하루하루 생활에 찌들려서일까?!
아님,
서울 하고도 강남 생활의 결과 인가?
많은 시간이 생활에 여유가 없이 달려 왔던것은 사실인데...
그래도 이곳에 와서 너무 한적한데?!
뭐지 이런 느낌이... 많이 오래전에 느껴본 느낌인데...
과거는 좋았던? 나쁘지 않았던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네...
이제는 늘 조급하게 그리고 여유롭지 않은것이 일상적인 생활이 더욱 익숙하다.
그래서 더더욱이 오늘따라 한적함에 쓸쓸함이 따라붙는다.
이곳에 은행나무는 격변기 국난에 반응하였던 나무로도 그 이름을 널리 알린바 있다. 현재에도 마을에서는 정월 보름날 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가까운 언덕에는 연산군의 묘역이 있다.
무슨 의미일까?
그 시절를 모르지만 연산에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진걸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된다.
이 나무에는 또다른 특이점이 있다.
나무의 중간 쪽에 새로운 가지가 수직으로 3개의 가지가 올라와 있는데, 헉. 이건 나무 위의 자그마한 나무의 숲이 형성되고 있는것 같다..,(나만일까 그렇게 느낀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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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경향신문 고규홍 나무 칼럼리스트의 2022년 11월 1일 기사 내용이다.
한 그루의 나무에 넓은 땅을 내어주는 게 불가능하리라 여겨지는 서울 도심에서 이례적으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살아가는 600년 된 큰 은행나무가 있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다.
하늘 향해 25m까지 솟아오른 나무는 지름 20m가 넘는 원형 공간의 땅을 홀로 차지했다.
이 나무는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을 피해 여주로 떠날 때 치성을 올린 나무라고도 하고, 조선 후기 경복궁 증축 때 징목(徵木) 대상에 선정되어 베어내야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대원군에게 간청하여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대감 나무’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여졌다.
장대한 위용의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는 크고 아름다운 나무라는 점에서도 보존 가치가 높지만, 정작 더 특별한 건 사람들의 극진한 배려를 받으며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사람 중심의 번거로운 도시에서 살면서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는 죽음의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다. 나무 곁으로 빌라와 아파트를 비롯한 살림집 등의 건물이 들어선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서울에서 나무가 부닥쳐야 하는 별 도리 없는 운명이다. 나무에 그늘이 드리워지고, 바람길이 막히고, 나무 곁의 땅이 짓밟히며 나무의 생육에 장애가 생겼다.
그때 나무를 온전히 살려야 한다는 마을 사람들의 청이 이어졌고, 도봉구에서는 병든 가지를 제거하고, 썩어 텅 빈 구멍을 충전재로 메우는 등 외과수술을 네 차례나 했다. 그러나 나무의 생육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 정밀진단을 한 도봉구는 결국 나무뿌리 부분 위쪽으로 들어선 빌라 2동의 12가구를 매입해 철거하고 나무 주변을 공원 구역으로 조성할 것을 결정했다. 모두 40여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결정이었다. 마침내 나무는 건강을 회복하고 푸르게 살아났다.
앞의 성수동 성당의 느티나무도 한번의 고비가 있었다. 그러다 성당과 카톨릭 교구의 관심과 노력에 의해 살아 남았다.
이처럼 사람들이 나무와 함께 하고자하면 그나무는 대대손손 살아서, 많은 이의 추억과 의식속에서 함께 하게 된다.
삭막한 현대를 살아가는 요즈음 민초들의 자그마한 위로와 듬직한 버팀 목이 되어주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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